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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7 16:10 | 컬처·라이프

[육아에세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감성 육아 일기 ‘아빠라서 미안해’

[웹데일리=싱어송라이터 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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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8 : 너의 목소리가 들려

우리의 하루는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매일 아침 아이의 칫솔 위에 올려지는 달큰한 바나나 향 치약 냄새. 밤 새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부지런히 쓸어내는 경비원 아저씨의 빗자루질 소리. 오후 무렵의 어느 학교 앞, 줄지어 늘어선 자동차들의 깜박이는 비상등 불빛. 새벽녘 선잠이 든 내 품을 파고드는 고사리 손길 속 따뜻한 딸의 체온.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는 일상의 조각들은 층층이 쌓여 하루가 되고 추억이 된다.

어릴 적부터 난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듣고 한번도 배워본 적 없는 피아노 건반을 금세 뚱땅거리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곧잘 흉내내 어른들에게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잠들기 전 부모님의 방에서 새어나오던 나지막한 웃음소리는 마음을 쓰다듬는 자장가가 돼주었고, 세 살 터울의 형이 이따금씩 들려주던 LP판의 이국적인 음악은 내겐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고 보면 목소리가 또랑또랑한 아내와 결혼한 것도, 오랜 시간동안 음악과 함께 살아오게 된 것도 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깨닫게 된 건 모든 소리에는 미쳐 표현해내지 않은 감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로 어렴풋이나마 엄마의 기분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도, 방문을 여닫는 소리에도 형제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귀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가 가진 저마다의 프리퀀시는 어느 순간 가슴 속에 묘한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 나간다.

언젠가부터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게 참 좋다. 흡사 동물의 울음소리 같던 아이의 소리가 어느 새 제 목소리를 갖추면서부터 난 그 특유의 주파수에 푹 빠지고 말았다. 아이는 앙증맞은 목소리로 하루 동안 참 많은 감정을 쏟아낸다. 세상 슬픈 표정으로 빽 하고 울다가도 사탕 하나에 금세 폴짝거리는 딸에게 아내는 감정이 슬픔과 기쁨 밖에 없는 이진법이라고 놀리곤 하지만, 나는 아이의 감정 속에서 사계절을 읽어내곤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드는 순간까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의 홍수 속에 때때로 난 정신을 잃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찬찬히 그 흐름을 쫓다보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 예쁜 소리를 하나라도 놓칠까봐 귀가 열 개 쯤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딸 바보가 되는 순간이다.

아이의 목소리가 소중한 건 어쩌면 그것이 내 일상의 감정들과 연결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아이가 삶의 중심에 자리 잡는 건 자식 키우는 부모들의 숙명인 것 같다. 나보다 먼저 잠에서 깬 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빠‘ 하고 불러줄 때. 매몰차게 울어대던 아이가 품에 안겨 마음을 가라앉히며 훌쩍일 때. 엄마와 장난을 치다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까르르 웃어댈 때. 아이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많은 순간들이 좋은 부모라는 커다란 산을 이제 막 오르려는 내게 안심이자 위로이고 행복이 된다.


얼마 전 부터 아침 등원 길에 딸과의 대화가 조금은 뜸해진 것 같아 음악을 틀어주기 시작했다. 매일 듣는 동요 보다는 클래식 음악이 좋을 것 같아 조심스레 들려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아름답다‘, ‘신난다’ 등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던 아이가 말한다.

"아빠 노래 들을까?"

평소 내가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려 하면 손사래를 치던 터라 나는 재차 물었고, 아이의 대답은 같았다. 난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얼마 전 발매되었던 내 노래를 틀었다. 전주가 흐르고 노래가 코러스 파트에 다다를 즈음 아이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난, 너라서 좋았어~"

채 영글지 않은 발음으로 한 음, 한 음 열심히 따라 부르는 아이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가을 햇살이 눈부셨던 탓인지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빠가 노래를 하러 간다는 말이 곧 함께 놀지 못한다는 서운함이 되어버린 딸. 아직은 아빠가 너무도 좋은 내 딸과 함께 한 이 짧은 순간은 내 생에 최고의 공연이었다. 더불어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도록 자리 잡으리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순간이 소리를 타고 기록된다.

늦은 저녁, 딸과의 놀이에 지쳐 한숨이 조금 새어나오려 할 때 쯤 들려오는 소리.

"띠리릭"

퇴근 한 아내가 문을 여는 소리. 길었던 내 하루 끝 육퇴를 알리는 반가운 소리.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 델리스파이스 – 챠우챠우(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1997년, 1집 – <Deli Sp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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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음반산업협회


3인조 그룹 델리스파이스가 1997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이다.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들의 대표곡 '챠우챠우(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델리스파이스는 대한민국 모던 락 장르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제가 밴드 음악을 하게 된 이유도 아마 이들 때문이 아니었나 기억되네요. 단순하지만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가사는 어느 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귓가에 딸의 목소리만 가득히 들리는 저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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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조제는 촉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뮤지션으로, 2005년 밴드 필베이의 보컬로 데뷔했다. 현재 밴드 모노크롬카세트의 보컬, 싱어송라이터 조제,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문예창작학, 와인양조학을 전공하는 등 음악 외에도 와인, 요리, 문학 등 다양한 재능과 색채를 지닌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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