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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16:59 | 컬처·라이프

[인터뷰] '산드라 바스케즈 델라 호라',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연필로 그리다

우손갤러리서 6월 8일까지 전시

[웹데일리=이소영기자] 디지털 시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산드라 바스케즈 델라 호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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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산드라 바스케즈 델라 호라' / 사진=우손갤러리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작품에는 칠레의 토속 신앙과 주술, 신화가 담겨 있어 이국적이다. 여성 그리고 남미 작가가 주목 받는 요즘 어머니와 딸, 여성 미술가의 관점에서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그림에 담는 그녀의 우아한 작품 세계를 탐구해보자.

산드라의 작품은 최근 '아트 파리'와 '드로잉 나우' 아트페어에 출품해 호평 받았다. MOMA, 퐁피두센터, 필라델피아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으며, 그림이 없어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시아 최초 개인전이기도 한 우손갤러리 전시는 오는 6월 8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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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idad Planetaria, 2015, graphite on paper, wax, 78 x 107,5 cm x 3 pieces / 사진=우손갤러리
Q. 한국을 처음 방문한 소감이 궁금하다.


처음 온 것 같지가 않다. 마치 다른 시대에 내가 한국에 살았던 것 같다. 데자뷰를 느낀다. 오프닝이 끝나고 대구, 밀양, 부산, 영주의 절을 방문했다. 사람은 마음과 머릿속이 다르다. 나는 어느 나라에도 속해있지 않고, 종교는 없지만 모든 종교를 포용하려고 한다. 예술은 시각적으로 매우 복잡한 장르다. 하지만 드로잉은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Q. '종이'와 '연필'이라는 원초적 재료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종이와 연필이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언어라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는다. 칠레에 살다가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했는데, 아시다시피 칠레는 정치·사회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나라다. 독일어도 모르는데 이민 간다는 것이 무모했다. 딸은 독일어를 배워서 금새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독일어가 익숙해지기까지 한참 걸렸다. 딸에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떤 언어로 이야기해야 될지 고민했다.

제일 확실하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바로 드로잉이었다. 신화, 전설, 토속 신앙 속의 이야기를 각색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신화는 고대로부터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이야기 속에서나마 정리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 근본적 이야기를 인간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작가로서 나의 기본 컨셉트다.

내 그림 안에는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문구가 삽입돼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어릴 적 글자를 배우기 전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당시 글자가 의미가 아닌 하나의 형상으로 보였다. 글자를 보고 내용을 상상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작품을 보는 관람객에게 그 심경을 전하고 싶다. 읽지 못하는 문자 형상은 이미지와도 같다.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가장 가까운 단어일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드로잉이다.

번역은 그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장르다. 한국에 살지 않으면 모르는, 한국어를 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그런 문화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통역은 언제나 어렵고, 드로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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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usiones Marinas, 2012, graphite on paper, wax, 39 x 27 cm / 사진=우손갤러리
Q. 아시아 첫 개인전 '그림자 되찾기(Take Back My Shadow)'의 주제에 대해 소개해달라.

내 작품은 유럽, 미주에서 인기가 있어 작품이 부족해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신작 보다는 내가 침실에 숨겨놓은 마음 속 깊이 아끼던 구작들을 주로 선보이게 됐다. 전시하려고 그린 작품들이 아니다. 일기장 같은 사적이고 굉장히 솔직한 감정을 담은 작품들이며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보여준 것도 처음이다.

1990년부터 2018년까지의 작품들을 모은 일종의 회고전이다. 처음 온 나라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컨셉트여서 특별하다. 딸과 소통하고 싶은 인생을 물의 언어로 기록한 그림들이라 팔기 싫어 은밀하기 방안에 숨겨놓은 것들을 보여준다는 것이 처음에는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스스로 감동 받았다. 아시아 첫 개인전이라는 의미와 함께, 아껴두었던 작품을 공개하게 되니 뜻 깊다. 왜 이 작품들을 한국에 보여줄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는데, 전시장을 둘러보니 기쁘다. 내 작품은 대중이 정의하는 아름다운 미술 작품이라기 보다는, 포장하지 않은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간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알고 보면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다. 정치, 종교, 욕망과 같은 근본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이에 대한 한국 관람객의 반응을 걱정했는데, 호평을 받아서 기분 좋다.

Q. 전시 제목 '그림자 되찾기'는 어떤 의미인가?

작품의 첫인상은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현대사회 속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다. 획일화된 사회에 살면서 과학 문명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한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그것과 반대되는 정서가 작품의 주제다.

인간 본연으로 되돌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렸는데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런 인간의 본모습 말이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랑, 열정, 욕망 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각자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인류 사회에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갈등 때문에 아직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구스타프 융과 같은 철학자의 영향으로 꿈이나 기억의 언어를 이미지화 시키는 연습을 많이 했다. 이것이 내가 드로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의 주제는 다 달라 보이는데, 전달하고 싶은 주제는 우리 인생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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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Portador de las Estrellas, 2015, graphite on paper, wax, 78 x 107.5 cm x 3 pieces / 사진=우손갤러리
Q. 종이를 접어 펼쳐진 3D 드로잉도 흥미롭더라. 조각 작품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조각이 아니다. 드로잉도 평면을 벗어난 입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도 드로잉 입체 작품이 많았다. 연극 무대나 연극 장면을 담은 드로잉과 같은 것 말이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와 같은 많은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이 입체 드로잉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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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Soplo de Diva, 2010, graphite on paper, wax, 65.5x50.5 cm / 사진=우손갤러리
Q.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전시 메인 이미지로 사용한 작품 'No Pondre Las Manos Al Fuego(내 손을 넣지 않겠다)'를 설명하고 싶다. 칠레 속담이 써있는 작품이 있다. 한국어로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로 번역할 수 있겠다. 로마제국 시대 군인들이 저쪽에서 적군이 다가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이 아니라면 내 손을 걸겠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한 일들과 라틴 아메리카의 독특한 신화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 그림 속 여성이 토끼처럼 보이는데, 토끼는 칠레에서 전설이나 우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토끼는 빠르게 뛰어다니고 컨트롤하기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반면에 여자는 자유롭지 않은 존재다. 그림 속 여성처럼 고무줄에 묶여 불 속으로 들어갈 수도, 불 속에서 나올 수도 없다. 여성에게 주여진 환경, 사회, 정치적 이슈를 담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또 다른 작품 'UN SOPLO DE VIDA(삶의 숨결)'에서 무언가를 타고 있는 여인 그림은 고디바 여인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아시다시피 그녀가 옷을 벗고 말을 타고 가는 이유는 남편에게 속박 당한 귀족 여성으로서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남미에서, 이 세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나는 그것을 드로잉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개인적이면서 보편적 이야기를 이미지에 담아 다수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Q. 딸과 여전히 드로잉으로 소통하는가?

내 작품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나만의 경험과 지식이 작품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간의 인생에서 얻어진 느낌을 한꺼번에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 관람객을 위해 지금 인터뷰할 수 있어 다행이다. 딸은 이제 24살이 되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독일에서 성장해서 어릴 적에는 서로 대화가 안 통했는데, 요즘은 스스로 칠레를 왔다갔다하며 스페인어를 배워서 농담이 통하기 시작했다. 남미 특유의 문화는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한심하다. 비극에 대해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딸도 이제 그러한 블랙 유머를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다. 삶을 희극화시키면서 비극을 뛰어넘으려는 사정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Q. 여러 종류의 종이에 연필로 드로잉하며, 1997년부터 완성된 드로잉을 녹인 왁스에 담가 마무리했다고 들었다.

왁스 작업을 하게 된 배경에는 라틴아메리카 문화가 녹아 있다. 한국 여성들도 부엌이나 아궁이 앞에서의 생활이 일상이라고 들었다. 칠레 여성도 마찬가지다. 여자들이 주로 부엌에서 생활한다. 나는 드로잉도 요리라고 생각한다. 같은 재료를 써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른 맛이 난다. 때문에 작가의 손을 거쳐 드로잉마다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왁스로 처리하는 것은 보존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간이 불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얼마만큼 재료를 섞고, 얼마만큼 끓이는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며, 하나하나가 특별해진다. 종이마다의 특징이 남아있으면서도 왁스에 담갔다가 뺐을 때 통일감을 가진다. 투명한 피부와도 같이 드로잉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도 목적이다.

액자 프레임은 일부러 하지 않는다. 물론 컬렉터가 원하면 액자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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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FUMAPOR, 2009, graphite on paper, wax, 33 x 23.5 cm / 사진=우손갤러리
Q.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에 대해 설명해달라.

해골, 불, 뱀은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요소다. 불은 예로부터 연금술과 관련이 있다. 여러 신화에 등장하며 불을 통해 많은 것이 변화한다. 요리에도 불이 필요하다.

뱀은 유혹을 상징한다. 모든 인간의 삶에 그런 유혹이 많다. 유혹에 빠졌을 때 아담과 이브처럼 천국에서 쫓겨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Q. 베를린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는?

전 남편도 칠레에서 활동했던 미술가다. 둘이 함께 독일에서 성공하고 싶어 베를린에 왔는데, 남편은 다시 칠레로 돌아갔다. 나는 딸과 베를린에 남아서 행복한 작가가 되었다. 프랑스 생떼띠엔 미술관에서 유럽 첫 개인전을 가지며 호평 받아 작가로서 유명해졌다.

베를린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이 산다. 많은 인종과 언어가 공존하기에 오히려 독일인이 외국인인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도 날 외국인이라고 소외시킨 적이 없었다. 나의 개들마저 헝가리와 네덜란드에서 온 유기견 출신이다. 베를린은 그만큼 국제적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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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ucana, 2009, graphite on paper,wax, 98x70 cm / 사진=우손갤러리
Q. 세계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출신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연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번에 참가했던 '아트 파리'의 테마가 마침 '여성 라틴아메리카 작가'였다. 우손갤러리 이름으로 참여했으며, 이와 관련한 특별 전시를 가졌다. 요즘 남미 미술이 주목 받고 있는데, 남미는 남성우월주의가 특징이다. 남미에서 여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여자로서, 작가로서, 엄마로서 사는 그 모든 것이 어렵다. 여러 역경을 이겨내면서 산다는 것이 대단하다. 남미의 이런 문화가 관심을 받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Q.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며 그리스 출신의 거장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에게 사사했다고 들었다.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가?

쿠넬리스는 작은 드로잉이라도 웅장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드로잉을 계속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스승이다.

작가가 된 동기는 소통하고 싶어서였다. 대화로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해 작품으로 이야기하고자 했고, 여전히 작품은 내 유일한 소통수단이다.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하나가 아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모두 각자 가지고 있다. 나 스스로 치유 되고 소통도 할 수 있는 작품을 계속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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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 Estadios de la Vida, 2011, graphite on paper, wax, 32.8 x 21.3 cm / 사진=우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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