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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광진 행정사의 국회 입법 속살 ④] 날치기 국회와 '바람잡이·망보기·기술자' 국회의원

함광진 행정사 | 2020-04-2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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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뉴시스]
image 기술자 물새(최민수)는 양아버지에게서 배운 소매치기 기술로 용달(허준호)과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며 살아간다. 물새는 양아버지 밑에서 함께 자란 의붓남매인 지숙(김혜선)에게 동생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지숙은 부잣집 아들 연수(손지창)와 결혼한다. 지숙을 남몰래 사랑하며 어둠의 세계에서 탈출하려 몸부림치는 물새는 함정에 빠져 끝내 죽음을 택한다. 1990년대 인기 드리마 ‘걸어서 하늘까지’의 줄거리다. 소매치기가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소매치기 범죄가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저녁 뉴스나 신문지상을 가득 채우던 소매치기범 검거 소식이 없어져 갈 때쯤 국회 날치기 뉴스가 그 빈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국회의 날치기는 의원수가 많은 다수당이 소수당과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 대화와 토론을 생략한 채 수의 힘으로 밀어붙여 표결을 강행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그동안 기술자, 망보기, 바람잡이 등으로 역할을 나눠 ‘예산안 날치기’, ‘미디어법 날치기’, ‘공수처법 날치기’, ‘선거법 날치기’, ‘여당 날치기’, ‘직권상정 날치기’ 등 많이도 해먹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국회 날치기에 이골이 났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는 조항은 우리 ‘헌법’ 국회 편 맨 앞줄에 있다. 우리 국민이 국회에 맡긴 첫 번째 임무가 입법이다. 입법은 국회가 우리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해 절차에 따라 형식을 갖춘 법률을 만들고 이를 바꾸거나 없애는 과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률은 나라의 바탕이고 뿌리이자 줄기이므로 입법은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본질적인 권한이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의 입법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입법준비

여론·민원·평소 소신 등을 통해 입법의 필요성을 인식한 의원(보좌진)은 입법을 결심하고 관련 자료수집, 이해관계인과 정부 의견 청취 등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입법안의 입안 및 발의

보좌진 등이 작성한 법률안 초안은 의원 10명 이상으로부터 찬성(공동발의)을 받아 의장에게 제출한다.

본회의 보고와 상임위원회 회부

의장은 법률안이 발의되면 이를 전체 의원에게 배부(인쇄 또는 전산망 입력)하고 본회의에 보고한 후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한다.

입법예고

소관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회부된 법률안의 입법 취지와 주요 내용 등을 국회공보 또는 국회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재하는 방법 등으로 입법예고한다.

소관상임위원회 회부 및 심사

상임위원회별로 소속된 의원들은 법률안의 옳고 그름 또는 문제점에 관해 토론을 하고 다시 소위원회에 회부한다. 대부분 소위원회에 소속된 의원들이 법률안을 통과시킬지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소위원회 심사결과를 보고받은 위원회는 법률안에 대해 원안의결, 수정의결, 폐기 또는 대안의결 여부 등을 표결을 통해 결정한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친 법률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체계와 자구에 대한 별도 심사를 거친다. 법제사법위원회가 제동을 걸지 않는 한 법률안은 본회의 처리만을 앞두게 된다.

본회의 심의

국회의원 모두가 참여하는 본회의에서는 법률안에 대해 보고·토론을 거쳐 표결하며 결정된 법률안은 국회의장이 정부에 이송한다.

법률안 공포와 재의요구

이송된 법률안은 15일 이내에 관보에 게재돼 공포됨으로써 법률로 성립한다. 다만 대통령 이의가 있을 경우 이의서를 붙여 국회에 환부하고 그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다.

이같은 입법과정은 헌법과 국회법에 근거하고 있다. 국민 여론 형성에서부터 국회의 최종 의사결정까지 대화와 토론을 보장하고 회의는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힘과 저질발언으로 무장한 다수당은 이를 무시하며 나라의 근간을 짓밟았다.

국회의 날치기는 드라마가 보여주었던 소매치기와 젊은 남녀들이 빚어낸 사랑과 꿈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구태정치를 끝내지 않으면 먹고 살겠다고 남의 호주머니를 터는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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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광진 행정사 ham98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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